금속인쇄술의 자랑스러운 직지와 인쇄술에 대하여

인류는 책속에서 다양한 지식과 자유로운 이야기를 책을 통하여 들을 수 있습니다. 책을 펼쳐 보면 다채로운 문구를 통하여 상상의 이야기가 생각 속에서 펼쳐지기도 합니다. 다양한 책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은 인쇄술이 기반으로 하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쇄술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들 보다도 역사적으로 앞서 있었던 금속인쇄술의 자랑스러운 직지와 인쇄술에 대하여 국가지식정보관리사업으로 구축된 국가학술연구 DB(http://www.riss.kr)를 통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동양의 인쇄문화

중국의 채륜에 의해 종이가 개량되고 보급되면서, 탁본기술로부터 목판인쇄가 시작되었습니다. 11세기에 들어 중국의 필승이 흙을 구워 만든 교니활자로 인쇄를 시도하였고, 고려에서는 금속활자를 창안하여 ‘직지’를 인쇄하였습니다. 인본에서는 770년에 목판으로 백만탑다라니를 인쇄하였으며, 증원지방의 목판인쇄기술이 서북지역인 든황의 위구르인들에게 전파되어 각종 불경의 번역과 판각 불화 인쇄에 응용되었습니다. 한편 기원전부터 동.서양 교류의 중심이 되었던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의 종이가 서양에 전파된 것처럼 동양의 인쇄·출판문화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현재로서는 당시 각국의 인쇄 관련 자료들을 통해 그 가능성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

금속활자는 활판 인쇄를 하기 위해 쇠붙이를 녹여 주형에 부어 만든 각종 크기의 활자입니다. 금속활자는 활자를 만드는데 사용된 금속의성질에 따라 석활자, 연활자, 동활자, 철활자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금속활자라고 하면 그 재료가 어떤 금속임을 막론하고 금속성이 있는 재료로 만든 활자를 총칭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비교적 일찍 발명되었던 교니활자 인쇄술과 목활자 인쇄술의 활자 제작 기술을 도입한 우리 나라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보다 먼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하고 이를 실용화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 직지에 대하여

직지의 본래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이며, 직지심요, 직지 또는 심요라고 합니다. 직지는 ‘수선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심성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게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엮은이는 조계대 선사인 백운 경한으로 그의 나이 75세가 되던 해인 1372년, 고려 공민왕 21년에 저술되었고 1377년, 고려 우왕 3년에 6월에 청주목의 밖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 되었습니다.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은 2001년 9월 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현존하는 금속활자본 중 세계 최고임을 공인 받았습니다.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이 세계기록유산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그 빼어난 가치를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것이며 모든 인류의 공익을 위해 보존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불조직심체요절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으며 불교에서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선과 관련된 내용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 흥덕사지

흥덕사지는 청주목 외곽에 있었던 흥덕사에서 ‘불조직지심체요절’과 ‘자비도량참법집해’등을 인출한 금속활자입니다.
볼조직지심체요절은 백운화상(1298~1374)이 우리나라의 학승들이 대교과를 마치고 수의과에서 학습하게 되는 “경덕전등록”, “선문염송”등 사전부의 여러 서적에서 선의 요체를 깨닫는데 필요한 것을 초록하여 상,하2권으로 나누어 편찬한 것입니다.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은 첫장이 결락된 38장의 하권 1책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보존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입니다.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의 권말에는 ‘선광칠년정사칠월일청주목외흥덕사주자인시라는 간기가 있어, 우왕3년(1377) 7월에 청주목 외곽에 있었던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은 유네스코 ‘세계의기억’에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입니다.

흥덕사에서는 ‘자비도량참법집해’도 금속활자로 인출한 바 있었습니다. 이는 최근에 그 번각본이 국내에서 발견됨으로써 알려진 사실입니다. 번각본 ‘자비도량참법집해’에는 그 간행연도를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본서의 금속활자본은 청주의 흥덕사에서 인출되고 그 번각은 경상도지방에서 행하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조직지심체요절’과 ‘자비도량참법집해’등을 통해서 볼 때, 흥덕사 나름의 재래식 방법으로 주조한 ‘흥덕사자’는 중앙관서에서 주조한 금속활자인 ‘증도가자’에 비하여,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않고 조잡할 뿐만 아니라 조판술도 미숙한 편입니다. 그러나, 원의 굴욕적인 지배로 중앙관서에서의 금속활자 주조와 인출 기능이 마비되었던 당시에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서적을 인출한 것은 고려 금속활자인쇄술의 맥을 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서양의 인쇄문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 두기를 소망했습니다. 이를 위해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돌, 구워진 흙,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의 서사개요에 기록을 쓰고 새겼으며, 이러한 기록물들은 도서관에 보관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나 화재 등 은 종종 여러한 유일 기록물들을 태워버렸고, 여기에 담긴 내용물들은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사라졌습니다.

15세기 중반 독일 구텐베르크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활자인쇄술은 르네상스가 유발시킨 복발작업의 수요의 증대에 따라 급속하게 보편화. 상업화 되었습니다. 발전된 인쇄문화는 다시 유럽에서 차례차례 일어난 종교개혁과 산업혁명, 자본주의의 등장에 결정적인 배경이 됨으로써 인쇄술은 유럽 근대 문명의 탄생을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곧 유럽에 있어서 활자 인쇄술의 발전은 소수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지식문화에서 소외되었던 대중속으로 급속하게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는 근대 유럽문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쉬 구텐베르크는 1400년경 보석세공과 유리를 만드는 일을 하였으며, 인쇄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인쇄용 활자를 주물로 만드는 법과 인쇄기계, 인쇄용 잉크를 고안하고 개발하였습니다. 1450년경에는 마인츠에 인쇄공장을 세우고 면죄부 등을 인쇄했으며, 2~3년 후에 쿠텐베르크 성서’이라고 부르는 ’42행성서’를 인쇄했습니다. 42행성서는 한 페이지가 42줄 2단으로 이루어져 붙여진 이름으로 모두 180부를 인쇄하였으나, 현재 전하는 것은 모두 48부로, 종이에 인쇄한 것이 36부, 양피지에 인쇄한 것이 12부입니다. 쿠텐베르크는 이 성서의 인쇄를 위해 290개의 서로 다른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며, 활자 조만을 위해 적어도 10만 개의 활자를 주조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주물들과 인쇄기를 토입해 책을 대량생산해게 된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에 대해 더 알아보기

※ 참고문헌 및 사이트

ㅇ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박문열”
ㅇ 직지와 한국고인쇄문화 1999 청주고인쇄박물관
ㅇ 청주 고인쇄박물관 http://jikjiworld.cjcity.net/main/jikjiworld

This entry was posted in 문화생활 and tagged .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